안녕하세요, 황규성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예술학을 경험하고 잠시 전시 코디네이터로 일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8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9개 전시를 진행하고 보조하며 서른일곱 명의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날들을 생각하자면 전시 만드는 일의 기쁨은 만남이었고 핵심은 듣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불시착한 이방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외계인이고, 외계인과 외계인의 만남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스쳐 지나간 줄도 모를 만큼 작은 인연도 반드시 나를 변하게 하는데,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접속한 서른일곱 개의 세계는 지금 저의 문법을 이루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요즘은 책을 만들면서 지냅니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부터 오늘까지

저는 8시 22분에 태어났습니다. 요즘은 그 시간에 641번 버스를 타고 대방역과 신길역 사이를 지나갑니다. 집에서 출발해 30분쯤을 달려 문래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3분 거리에 15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이 보입니다. 그곳에 사무실을 둔 작은 출판사에서 매일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한 건 올해 2월 중순입니다. 세상은 나를 기필코 바꿔놓지만 그것이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동하며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긍정할 수 있다면 이 삶과 세계를 비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 변한다는 건 삶이 이야기가 되어간다는 뜻이고, 이건 제가 사랑하는 소설가 김연수에게서 배운, 책에서 얻은 처음이자 마지막 교훈입니다. 아, 결국 또 김연수를 말하게 됐습니다.

2014년의 어느 하루, 어머니가 방에 들어와 두 권의 책을 건넸습니다.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그리고 김연수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이야기 쓰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는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주변 편집자의 추천을 받아 빌려온 거였습니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첫사랑」의 서늘함은 어렴풋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서늘함이 촉발한 불씨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1

김연수 작가가 소설 쓰는 일에 관해 쓴 책은 오래도록 제 삶의 지침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내 마음도 모르고 지속하는 이 세계를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완전한 절망을 껴안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이 삶이 이야기라 믿으며 무언가를 써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야기에 몰두하게 되면서 책을 모아오고 있습니다.

책은 미래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건 삶과 긴밀한 정도가 아니라 생명유지장치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어쩌다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됐냐고 묻는다면, 저에게 남은 방법이 이것뿐이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쩌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고 책을 쓰는 사람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며 책을 읽는 사람보다는 책을 사는 사람으로 살고있습니다. 그 이전의 설명은 제 안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이후는 오늘과 다르지 않겠습니다. 어느 미래에 오늘부터 그날까지의 지속을 설명할 때,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부터 오늘까지 책을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 2014, 41쪽.

책은 그럴싸한 미래가 되곤 합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미래를 쓰기 위해 책에 산다.

모르는 쪽으로, 조금 더 모르는 쪽으로.
속수무책으로 쌓이는 책은 늘 그쪽을 향한다.

지난 주말에는 책장을 정리했다. 늘어놓은 책을 여기저기 옮겨 넣으며 겨우 바닥을 비웠는데 어느새 또 쌓였다. 새로 온 책 여섯 권, 빌린 책 한 권, 꺼낸 책 세 권. 당분간 안 사겠다는 약속은 못 지켰지만 분명 덜 사고 있다. 덜 사지만 여전히 산다는 것에 안도했다.

책은 내가 여전히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알게 되기 때문에 결국 알 수 없다는 사실까지 나아가는 일. 그게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온 책 읽기다. (책을 그만 사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동안 지켜온 많은 것을 포기한 상태이지 않을까.) 책 고르는 일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무엇을 적극적으로 모를 것인가. 거기에는 오래도록 지니고 다니는 문제적인 단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미래.

그리고 책은 그 자체로 미래가 된다.

회사에서 도서 지원비를 받아온 4월 어느 하루, 퇴근하자마자 가만히 누워 책을 골랐다. 주문 내역에 찍힌 입금확인일 2023년 04월 19일 수 00시00분. 금액을 딱 맞춰보겠다고 시작한 게 네 시간이 흘렀다. 정말 가만히 그것만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황당했지만 별수 없이 잘 잤다.

책은 오늘 하루치의 미래다. 책을 고르는 일에는 어떤 가능성과 기대가 깔려있고, 뻔뻔한 미래를 계획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 일은 최근까지 미래를 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확히 10만 원어치의 책을 고르는 일은 그래서 간단하지 않다. 여러 권을 한꺼번에 들일 기회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목록을 구축하려 들게 되고, 그건 일종의 설계에 가까워진다. 똑같이 금액을 맞춰도 조합에 따라 다른 꿈이 된다. 겨우 하루치의 미래일 뿐이지만 하나만 달라도 모양이 크게 바뀌니 심각할 수밖에. 그날 한 번도 빼지 않은 책은 『오월의 사회과학』이었다.

책장 전체를 뒤엎으면서도 건드리지 않은 유일한 칸이 하나 있다. 거기에는 어쩐지 사랑하게 된 이들이 있고, 사랑, 이별, 죽음이 있다. 먼 곳에서 먼 곳을 사랑하고 그리워한 그들을 그리워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탓에 가지런히 정돈만 해두었다. 그곳에는 지금 어떤 바람이 부는지. 독일에 통영에 그리고 제주에.

그리고 김연수 작가를 좋아해요.

18XX년, 그러니까 19세기의 어느 날에

키보드 필사를 마쳤습니다. 이 소설은 문학광장 문장웹진 3월호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단편 소설 「바양작에서 그가 본 것」입니다. 저는 김연수 작가를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신작 단편을 읽으니 참 좋네요. 이 문서에 접속하신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읽으신다면, 입술을 잊지 말아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김연수 작가 소설의 아름다움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긴 분량은 아니어도 단편 하나를 필사하는 게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종이에 눌러쓰면서 하는 일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는 손목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키보드로 필사를 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저도 하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처음 키보드 필사를 해본 건 학교 교양 수업에서였습니다. 매주 단편 소설을 하나 읽고 조별 발표를 하는 수업이었는데 대형강의이다 보니 책 구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동네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는 소설을 학교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전자자료로 겨우 찾았고, 글쓰기에 관심이 조금씩 생기던 차에 필사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문서 편집 프로그램을 켰습니다.

그 단편 소설은 최제훈 작가의 「퀴르발 남작의 성」이었습니다. 제7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등단작입니다. 등단한 해가 2007년, 최제훈 작가는 1973년생,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만 34세에 등단. 이렇게 매년 늦었다는 기준을 갱신해 주시는 분을 발견하니 왠지 여유가 생긴 기분입니다. 물론 김연수 작가처럼 아주 젊은 나이에 등단하는 사람도 많지만요. 김연수 작가는 1970년생, 1993년 시로 등단, 1994년 장편 소설로 수상하며 그 후로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으니, 만 23세부터 소설 쓰는 일을 3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김연수 작가와 10년 단위의 주기를 함께 갈 수 있다면, 그와 제가 동시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10년마다 나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유가 사라지네요. 올해를 열심히 살아야만 하겠습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그런 꿈은 없습니다만, 제가 본 아름다운 순간들이 얼마간 지속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 마음은 아마도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싶다는 것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세상을 너무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퀴르발 남작의 성」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키보드 필사가 꽤 훌륭한 읽기라고 느꼈던 것은 분명합니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긴 소설을 꼼꼼히 읽지 못하는 제가 어쩔 수 없이 글자 하나하나를 짚으며 읽고 옮겨야 했으니까요. 다 읽었다. 잘 읽었다. 아, 문장을 쓰는 일이 이런 거겠구나.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소설에 대해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기까지는 그 뒤로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어느덧 할머니는 구순이 되었고, 몇십년 만에 당신의 자식들과 작은 집에서 모여서 (어쩌면 처음이었을) 생신 파티를 했고, 벽에 걸린 아주 오래된 가족사진을 함께 보면서, 저게 딱 삼십 년 전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렇게나 오래도록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 나의 삼촌, 나의 큰이모, 나의 작은이모인,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세계에 존재했던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래서 저는 흘러가는 시간을 거슬러 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가끔 상상합니다. 상상해야만 합니다. 다만 시간을 정말 거스를 수는 없으니, 시간이 앞으로 흐른다면 저는 뒤를 보며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 시간이 흐르고 흐를수록 더 멀리 봐야겠지요. 그들이 아이였을 시절로부터 시간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1962년에 시작한 삶. 1932년에 시작한 삶. 1910년대에 시작했을 삶. 18XX년, 그러니까 19세기의 어느 날에 시작한 삶. 어머니와 할머니와 할머니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할아버지 삶에 상상이 닿을 수 있다면.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오봉리 95. 할머니가 80년 가까이 가보지 못한 곳의 번지수까지 기억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볼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시간이 흐르는 속도에 비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할 수 있다면. 그 모든 삶과 동시에 살아있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는 일을 30년 동안 하고 있는 김연수 작가는 요즘 그런 먼 시간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는 정확히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고, 재작년에 낸 장편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도 지금으로부터 꽤나 멀리 있는 백석의 시간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번에 키보드로 두드리며 읽은 「바양작에서 그가 본 것」에는 더 먼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을 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세계로 건너가 봅니다.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본 것을 상상하게 하면서. 그래서 많은 주인공이 자신이 그리워하는 사람에게도 그만의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주보기가 아니라 바라보기. 그 사람이 바라보는 것을 그 사람의 뒤에서 바라보기. 그 사람이 서 있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나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 당신과 나는 영영 같은 세계에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은 서운하더라도, 당신처럼 라일락꽃에 코를 가까이 대보고 작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철쭉과 진달래를 구분하게 되는 동안 나의 세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다가 더 먼 시간을 상상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김연수 작가에 빙의한다면 이런 말을 해보고 싶습니다.

다시 키보드로 필사를 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이야기해보자면, 그 시간이 그냥 좋았습니다. 한 문장씩 읽고 최대한 기억을 유지하며 옮기고, 이 단순한 일을 하면서 종종 머릿속에서 김연수 작가의 목소리로 글을 읊어봤습니다. 그가 쓴 문장들은 그의 말씨와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당연한 것인데도 때로는 행복하다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작가의 말씨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를 상상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들였구나,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그가 써온 시간을 처음부터 동시에 살 수는 없었지만 뒤따라 걸으면서 어느새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는, 그런 감격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다 읽었다. 잘 읽었다. 아, 문장을 쓰는 일이 이런 거겠구나.’ 여기에 한 문장을 더해보고 싶어집니다. 이제 그를 따라 쓸 수 있겠구나. 그의 말대로 쓸수록 좋아지는 거라면 2033년에는, 아니, 2043년에는 그의 옆에서 걸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뒤에서 바라보는 게 더 좋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무엇이든 쓰기도 하고요.

이마가 닿으면(1)

양재역에서 수원 방향 시외버스를 타고 삼십 분쯤 달려서 청명역 4번 출구 옆 정류장에 내렸다. 거기서 조금만 걸으면 왕복 11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나온다. 지난봄, 육교의 초입에서 조명에 비친 벚꽃이 한가득한 별처럼 밤을 밝히고 있었다. 그 아래서 달과 달처럼 둥근 것을 봤다. 가로지르는 것은 무엇이든 연결해 준다.

하얗게 부푼 밤을 잠시 떠올리며 육교를 건너가는데 계절감이라고 할밖에 없는 감각에 감겼다. 그 감각이 유난스럽게 느껴진 탓에 육교의 한가운데서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고 벌판 같은 봉영로를 내려다봤다. 한낮의 햇볕은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는 이마와 목덜미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새삼 생생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제법 선선했지만 열기를 덜어낼 만큼은 아니었다. 분위기를 계속 잡고 있기에는 뜨거웠으므로, 육교 너머 낮잠을 자고 있을 고양이들이 빨리 보고 싶었으므로, 이 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밤에는 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 버스는 한여름에도 땀구멍의 존재를 잊을 만큼 추웠는데 그날따라 에어컨이 시원찮았던 탓이었을까. 낮에 느꼈던 계절 감각을 떠올렸고 그것이 어쩌면 오랜 시간 일정한 온도의 공기가 도는 버스에 실려 온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불쑥 이어졌다. 현대의 계절 감각은 그런 낙차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현실적인 항상성에서 해동하는 감각. 언젠가 냉동인간이 깨어난다면 그가 남길 첫 번째 기록은 이 계절감에 대해서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는 온몸을 다해 말한다. 다시, 아니, 처음 봄.

9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도 그런 감각이 움트는 볕 아래 서 있었다. 이날을 기억하는 건 그 한 주가 꽤나 고단했기 때문인데 사무실이 새 공간으로 이사하기 전 마지막 주말 근무를 해야 했고 전날은 자정이 다 돼서 집에 들어갔고 그렇게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제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불안해서였다. 되려 여유 있는 사람처럼 이 일과 저 일 사이에 긴 공백을 두면서, 손에 잡힌 일도 천천히 음미하듯 하면서 시간을 채우고 나면, 더는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 할 때가 돼서 내일은 없다는 듯이 짐을 쌓고 옮기고 버린 후에야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릴 수 있었다.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북미산 너구리로, 나는 그 녀석이 작은 물가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시종 똑같은 사과 조각을 씻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했는데, 분명히 녀석은 아무 특별한 이유도 없는 이런 행위를 통해 자신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빠져든 이 잘못된 세상에서 빠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1

그날 오후 한 시가 조금 지나서 먹을 것으로 지난 며칠을 보상받겠다고 주중이라면 대기가 길어 갈 수 없는 식당에 갔다. 내 앞에 대기자는 한 명이었다. 십오분만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내 지속된 불안 덕분에 세상만사 외면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멍청하니 기다렸다. 십오분. 맑은 하늘에서 햇빛이 여과 없이 쏟아지는 그 시간은 정말 가을이었다.

몇 해 전, 어느 가을 한낮에 지긋한 여름 더위가 물러가고도 작열하는 해를 보며 투덜거리는 나에게 어머니는 원래 가을볕이 더 강한 거라고, 그래야 벼가 잘 익는 거라고 말했다. 과학도 경험도 아닌 그사이 어딘가에 서서 이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어머니의 말에는 충분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나는 납득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가을의 시작에 이런 날을 나는 해가 쨍쨍한 걸 보니 완전히 가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계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배운다. 계절에 관한 생각이 매년 갱신되고 축적된다면 더없이 행복한 삶이다. 갑자기 할머니의 계절에 대해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을 쓰겠다고 생각하던 날도 떠오른다. 찾아뵙지 못한 시간과 그나마도 짧았던 오랜만의 통화,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도. 이 모든 죄송스러운 마음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으니 나는 그저 달궈진 아스팔트를 피해 가게 입구 옆 주차장 그늘에서 건너편의 하얀 담벼락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 짧은 인내심을 알고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할지, 사실 기다리는 시간의 절반은 업무 전화로 보냈다. 협력 업체의 부장님은 오늘 했다가 잘못돼서 욕먹는 것보다 오늘 안 해서 욕먹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말이 내 말이었고 내 말이 그 말이었다. 우리에게는 상급자가 있다는 사실을 서로 상기하며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멀찍한 담벼락을 봤다. 그 목적 없는 시선을 거두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려는데, 상의 앞판에 붙은 빨간 것이 보였다. 무늬가 있는 나방이었다. 짧은 비명을 뱉으며 툭툭 털어냈다. 무게감도, 미약한 파닥거림도 없이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날아와 붙어있던 것처럼. 그리고 어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언젠가 나방을 손 위에 앉히는 날이 올까?

등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어. 나는 사로잡혀 있었으니까. 무질서하게 날아오르던 그 움직임이 한순간 빛깔로 바뀌어 파출소 벽에 멈춰 섰으니까. 주저하지도 않고 나는 그 빛을 향해 피켓을 휘둘렀어. 네모난 피켓이 파출소 벽에 부딪치는 동안, 무엇도 날아가지 않았어. 나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피켓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었어. 이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부딪쳤어. 누군가 목청껏 외치는 구호 사이로 기차 경적이 길게 그어졌어.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어.2

  1. W. 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안미현 옮김, 을유문화사, 2018, 8쪽.

  2. 김연수, 「첫사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 2003, 101~102쪽.

연습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읽고 쓰는 동안에

「전쟁과 테러」의 화자는 전시를 본다. 관람객으로 북적거리는 전시장에서 화자는 동선을 따라가며 사진을 본다. 화자가 주목한 것은 도움이 절박해 보이는,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사진 두 점이다. 두 사진에 대한 기술과 인용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보고 온 전시는 퓰리처상 사진전인 듯하다. 이 전시의 사진들이 언어와 다른 가능성으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면, 그 프레임 안에 담긴 것은 기록할 만한 한순간의 포착이며 그 순간은 얼마간 극적인 제스처를 포함하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화자가 묘사하고 있는 두 사진 역시 극적이다. 극적인, 곧 이야기할 만한, 즉 소비될 만한 그 순간은 폭력의 극점에서 셔터를 누른 손에 의해 한 장의 이미지로 맺힌다. 바로 그 손은 도움을 건네는 데 우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도 윤리에 관한 쟁점이 되어왔다.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된 두 사진을 선택한 것에서부터 화자가 윤리적인 문제를 염두에 둔 듯 하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이 시의 초점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화자의 마음이 투영된 것처럼 보이는 “안아주지 못해서 너무나 너무나 미안했다”는 콘도르 앞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두고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가 남겼다는 말의 인용이고, 이는 실제 전시에서 사진을 보충 설명하는 캡션에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화자의 감정을 대리하는 텍스트로서의 인용이 아니라, 화자가 본 것을 그대로 옮긴 묘사인 셈이다. (화자가 따라 읽은 긴급한 요청1 역시 사진에 제목으로 부여된 것이다.) 케빈 카터가 동료에게 호소했다고 전해지는 미안했다는 말은 전시가 연출하는 서사에 충실히 기능한다.2 이어지는 사와다 교이치의 비장한 전언도 마찬가지. “내일 전선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아직 죽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아요” 이 전시에서 화자가 본 말들은 진실을 위해 투신한 영웅적 사진가 이야기의 대사처럼 들린다.

케빈 카터가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두고 격화하는 윤리적 논쟁은 ‘셔터를 먼저 누른 케빈 카터’와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하는 케빈 카터’ 사이를 오가고, 아이가 볼 수 있었던 세계는 배제된다. 아이는 그 순간을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낮게 엎드린 백인 남자가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고. 아이가 몸으로 견디고 있었을 시간을 감히 상상해보자면, 그 사진의 사회적 파장력에 대해 쉽게 상찬하듯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가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해제를 기다리는 피사체가 되고 이외의 삶(의 가능성)은 탈각된 채 전시된다. 전시를 보고 나온 관람객은 포토 존에서 “차례차례” 스스로 피사체의 자리에 들어가고 화자는 그 광경을 본다.

「전쟁과 테러」에서 화자가 어떤 입장을 표명하기보다 보이는 것을 연속선상에 기술하는 방식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프레임의 연쇄다. 이 연쇄를 나열해보면, 객관적 사실이 극적인 사건(이자 순간)으로서 카메라에 담기고, 이것은 다시 물리적 사진으로 인화되고, 그 사진과 사진가는 전시물이 되고, 전시의 관람객은 관람의 순간을 기념사진으로 남긴다. 전시의 소비자였던 관람객이 스스로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 시에 등장한 모든 것은 전시된다. 기념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시태그를 달고 전시될 것이다. (그 이미지는 최초의 긴급한 목소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전시되기’의 연쇄, 그것이 마지막 행 “마음껏 전시한다”가 겨냥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전시되는 전시에서 말까지도 포토저널리즘 사진전의 모순된 드라마 연출에 복무하는 대사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은 언어를 다루는 시인이 봉착한 괴로움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래서일까. 화자가 목도한 풍경이 다소 관조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언어의 기능 상실3, 곧 진정성의 상실에서 비롯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안합니다
어깨를 치고 간 사람이 순식간에 멀어진다 뭐라고 미처 답하기도 전에
아스팔트 위에서 흔적도 없이 말라가는 비
거짓말처럼 오는 빛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귓가에 맺혀 혼자 중얼거리는,
(「흙먼지」 부분)

「흙먼지」의 화자는 길에서 누군가와 부딪힌다. 누군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지나간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미안합니다” 그 말이 화자의 귓가에 맴돈다. 그가 앞서 본 다큐멘터리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잘못 발사된 탄환에 부모를 잃은 여자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요?”라고 말한다. “쌓여있는 약봉지”는 그날의 일이 여자에게서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여자의 부모를 죽인 것으로 짐작되는 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두 상황에서의 미안하다는 말의 진심은 저울질 되지 않는다. 그것은 저울질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어깨에 퍼져간 통증이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전쟁과 테러」의 화자가 그 순간에서 어떤 진실도 구해내지 못한 사진을 봤다면, 「흙먼지」의 화자는 그 순간을 직접 경험한다. 스스로를 향해 있던 케빈 카터의 말처럼, 화자의 어깨를 치고 간 사람의 “미안합니다”는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오로지 자신에게 있어서 없었던 일로 무마하기 위한 혼잣말과 다름없다. 결국 실속 없는 기호만 허공에 떠돈다. 여기서도 언어는 소통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관습적인 체계를 확인하는 것 이상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언어에 기대하는 진정성은 현실에 닿지 못하고, 현실을 뛰어넘지 못해서 의심받는다. 「전쟁과 테러」와 「흙먼지」, 두 시의 세계에서 언어는 무기력하다. 문학에 쥐어진 책무 중 하나는 이런 공허에서 언어를 살려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흙먼지」 속 변용된 한강의 시구4에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5월 광장 어머니회’의 이야기일 이 부분은 1977년 아르헨티나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광장에 모여 시작한 집회를 묘사한다. 어머니들은 흰 머릿수건을 두르고 천천히 원을 그리며 침묵시위를 이어왔다. 말 대신 몸으로 시간을 채워내는 것을 한강은 보고 썼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언어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녀들이 무언가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음성에 실리는 말이 아니라 몸에 기입되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곤궁한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그리고 분노를 최대한으로 발화한 것은 아닐까.

「흙먼지」의 화자는 언어가 진정성을 의심받는 순간에 보던 다큐멘터리를 멈추고, 한강의 시5를 읽는다. 묵음을 선택한 언어가 한강에 의해 옮겨지고 다시 화자에 의해 변용되어 독자에게 닿는다.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여자들의 느린 행진은 국가의 폭력과 무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공동의 기억과 접촉한다. 이를 보고 이 시를 지은 정다연 시인이 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은연중 역설하고 있다고 끝맺는다면 그건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문학이 “언어, 즉 구문과 어휘의 절단, 오용, 전복, 왜곡, 불복, 비방, 편중, 불법 입국”6을 통해 모든 것이 납작하게 맺히는 디스플레이로부터 언어의 진정성을 구해낼 거라 믿고 싶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문장에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두며 함께 읽고 또 쓰는 이유이기 때문에.

  1. “너무 뜨거워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2. 2020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퓰리처상 사진전의 홍보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퓰리처상 사진전에는 인간 등정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속에는 전쟁과 가난, 삶의 기쁨, 그리고 거대한 역사의 순간들이 자리한다. (…) 이 사진은 뉴욕타임즈에 게재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구호를 이끌어 냈다.”

  3. 감상 행위 또한 비판적 사고 과정을 통한 언어적 활동이라고 할 때, 「전쟁과 테러」가 스케치하는 ‘감상하기’가 ‘전시되기’로 전도된 광경은 언어 활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기능 상실이기도 하다.

  4. “흰 머릿수건을 두른 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비를 맞으며 살해된 아이들의 이름을 수놓고”

  5. “비 내리는 동물원/철창을 따라 걷고 있었다//어린 고라니들이 나무 아래 비를 피해 노는 동안/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는 어미 고라니가 있었다/사람 엄마와 아이들이 꼭 그렇게 하듯이//아직 광장에 비가 뿌릴 때//살해된 아이들의 이름을 수놓은/흰 머릿수건을 쓴 여자들이/느린 걸음으로 행진하고 있었다”(한강, 「거울 저편의 겨울 11」)

  6. 로맹 가리, 『그로칼랭』, 이주희 옮김, 문학동네, 2010, 36쪽.

가끔은 사라진 놀이터를 떠올립니다.

어린 날 어느 밤

여기 공터가 있습니다.

동네 도서관 가는 길에 이 공터가 있습니다.

파란색 분진망에 가려진 공터 사진을 처음 찍은 날은 2020년 10월 4일입니다. 이날은 보름 만에 도서관에 갔는데 그사이에 공터 앞을 가리고 있던 가설 울타리가 해체된 것 같습니다. 네이버 지도에서 거리뷰로 2020년 5월 사진을 찾아보니 정말 울타리가 있습니다. (도서관을 몇 년 동안 다녔는데 도대체 뭘 보면서 다닌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대출 내역을 조회해 보니 어렴풋이 이날의 장면이 기억납니다.

한낮에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중이었고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처음 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너머에 저런 게 있었던가. 십자로 열린 분진망 사이로 초록색 더미가 보입니다. 그 뒤로 어린 시절 종이 박스를 깔고 앉아 썰매를 타던 풀밭이 떠오르는 언덕도 보입니다. 그곳을 보고 카메라 앱을 켜게 되는 찰나에 시절의 기억이 스쳤을까요.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그곳은 이제 없습니다. 나무와 풀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샛길이 참 많은 곳. 초등학교 5학년까지, 어린 시절의 전부를 보낸 곳. 가림막이 높게 들어섰고 더이상 그 안을 볼 수 없고 볼 수 있다 해도 거기엔 기억 속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다시 한번 네이버 지도에 들어갑니다. 거리뷰에 남은 가장 오래된 사진은 2010년 4월입니다. 한 곳을 너무 오래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으니 도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사거리. 한쪽에는 고등학교가, 다른 한쪽에는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둘 다 제가 다닌 곳은 아닙니다. 어린 날 어느 밤, 고등학교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빨간 불길이 번지는 모습을 분명히 봤습니다. 언젠가 그 이미지가 생각나 뉴스를 검색해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불길은 어디에서 피어올라 어디로 번져간 걸까요. 그곳에 살던 날은 이제 꿈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와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단지와 단지의 경계인 이 길은 걸어서 다닌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곳은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녀야 하는 길입니다. 길 건너편 단지는 거대한 바깥이자 다른 차원의 시공입니다. 기억을 모조리 동원해도 낯선 길을 지나 익숙한 단지 입구 앞에 섭니다. 이 단지는 골목골목 모르는 곳이 없습니다. 이 안에서라면 학교 담장도 넘어갈 정도로 용감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곰돌이 푸우가 환장하는 꿀단지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 동그란 손으로 보이지 않는 밑바닥까지 겁 없이 휘적거리며 긁어먹을 수 있는 그런.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이곳에 사는 동안 곰돌이 푸우를 수없이 봤습니다. 푸우 인형도 (티거도) 있었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바보 곰을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비디오는 어머니의 물건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어머니도 푸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책상에는 푸우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작업 중인 그림과 스케치한 종이들, 라이트 박스, 끝이 예쁘게 모인 빨간 자루의 둥근붓, 물감 굳은 팔레트, 생수병을 잘라 쓴 물통과 그 아래 깔린 물감으로 얼룩진 휴지, 0.3 샤프와 잠자리 지우개, 그런 것들이 널브러져 있던 책상 위 검은색 CD플레이어에서는 김동률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어머니의 취향을 물었던 최초의 기억은 열 살을 겨우 넘긴 즈음입니다. 김동률을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김동률에 대해서 그리고 전람회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어머니가 외출한 날에는 3집의 히든트랙을 들었습니다. 그때 이미 김동률의 노래가 좋았지만 어머니가 좋아한다고 해서 더 좋았습니다. 왜 그런 것들이 좋았을까요. 어머니가 좋아한 것들이. 푸우를 좋아할 나이에 살기 좋은 곳이었고, 지금도 푸우를 좋아합니다.

여기서부터는 2010년 10월입니다. 방 안에도 초가을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면서 더 안으로 들어갑니다. 5층짜리 아파트 사이사이 녹지가 많은 이곳은 계절 풍경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노랗게 단풍이 되어가는 잎들이 조금씩 보이네요. 어머니가 자주 가던 은행, 단지에서 가장 높은 꼭대기를 가진 교회 건물, 파출소와 주민센터도 있습니다. 그리고 파출소 앞에 한 칸짜리 공중전화 박스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유 주머니나 (연탄 아궁이였던) 빗자루 창고에 집 열쇠가 없으면 여기에서 콜렉트콜로 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전화했고, 휴대전화가 없던 어머니를 이 앞에서 만났습니다. 외출이 드문 어머니가 시내에 나가는 날이면 항상 해가 저물어야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이 공중전화 박스에만큼은 단풍 같은 노을빛이 들어야 합니다. 10월이라면 금세 어둑해진 그곳을 가로등이 밝히고 있어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화면에서는 밤을 볼 수 없습니다.

밤을 볼 수는 없지만 지금 이건 어쩌면 밤을 보는 일과 비슷합니다. 하루를 통틀어 어둠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야경은 칠흑에 잠겼을 때도 발하는 빛의 풍경입니다. 우리는 밤 풍경에서 어둠을 잘 보지 않습니다. 지금 통과하고 있는 이 풍경도 보이는 것에만 빠져드는 노스텔지어입니다. 그날 밤의 불처럼.

어둠을 볼 수는 없는 걸까요.

그곳은 이제 볼 수 없습니다. 제가 할머니 나이가 됐을 때도 이 땅 어딘가는 공사 중이겠지요. 저는 조금만 더 머물다 가겠습니다. 이제 저쪽으로 가서 동네에 유난히 많았던 노란 개나리를 봐야 합니다.

강박적으로 메모하던 날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언가의 초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뭘까. 그래본 적이 있던가. 김연수 작가가 아니었다면 지속하지 못했을 삶을 겨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그의 소설을 처음 읽은 때로 돌아가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그건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방법이 돼서 이제.

지난주에 쓴 글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문학이 ‘언어, 즉 구문과 어휘의 절단, 오용, 전복, 왜곡, 불복, 비방, 편중, 불법 입국’을 통해 모든 것이 납작하게 맺히는 디스플레이로부터 언어의 진정성을 구해낼 거라 믿고 싶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문장에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두며 함께 읽고 또 쓰는 이유이기 때문에.” 이 문장은 진심이었는데, 왜 이렇게 진심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고양이가 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시절이 있으면 좋겠다. 그것을 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하지 못한 거 남들은 다 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어린 날의 사진 하나.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뭐가 그렇게 긴장돼서 웃지를 못해. 바보 같다. 바보들만 모여있다. 할머니 집 베란다에 서서 굳어있는 나를 찍었을 아버지, 그 모습을 보고 있었을 할머니, 어머니도 그때 옆에 있었을까. 모두 바보 같다. 우리가 이런 시간을 지나올 줄 아무도 몰랐으니. 더 나은 것이 무엇이었을지도 알지 못하니 여전히 우리는 바보다. 세상 아는 척 그런 거 다 소용없다. 기대할 수 있는 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세상은 조금 더 낫길 바라는 것뿐이라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 말만 자꾸 하고 싶다.

조금 비어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면 예전의 메모를 다시 보게 된다. 거기에는 희망 같은 게 있을까. 지금이 꼭 절망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게 있으면 좋으니까. 메모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인 듯하지만 나 아닌 것 같고, 그때의 내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고, 다만 뭔가 있긴 한데, 그건 아마도, 무언가의 초고.

일인칭을 어려워하지만,

이토록 일인칭

편지는 제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건 자꾸만 고백이 됩니다. 고백이 아닌 편지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안부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을 생각하는 나의 시간은 어땠는지. 이건 지독한 일인칭입니다.

과녁을 향해 쏘는 말. 닿길 바라는—과녁으로 만들어버리는—마음.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말은 없으니 모든 말은 그래서 폭력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 없는 글을 쓰게 됐다. 자신이 주어인 문장이라면 주어를 삭제했고, 그게 불가능한 문장이라면 포기했다. 무언가에 관해 설명해야 할 때는 단정적인 표현을 피했다. 모든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 됐다.

신비함은 불가해하고 그래서 두려운 마음의 방어기제로 드러나는 감각일지 모른다. 어쩌면 10월에 내리는 눈을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결국 말할 데 없는 상태를 스스로 극복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불가피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실은 스스로 병을 만들고 키우려는 요량이었는지도 모른다. 거부당할 것을 알고도 매번 나에게 한잔하겠냐고 물어보면서 그 좌절을 핑계 삼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내가 한 잔을 마시면 그때는 기분이 좋아서 더 마셨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떤 이유로든 마시고 마셔서 삶의 무기력을 감춘 채 생을 앞당기려고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핵심은 ‘천천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번에 절망하지 않기.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열망하기.

그런 건 밤에야 떠오르고, 그래서 밤만 되면 자꾸 조금씩 비밀을 털어놓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을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매년 ‹포레스트 검프›(1994)를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제는 시작부터 운다. 포레스트의 얼굴만 봐도 운다. 몇 번 더 보면 러닝타임 내내 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볼 때마다 놓친 장면들을 발견하고 그게 좋고 그래서 운다. 그리고 점점 더 모르겠다. 포레스트를 알 수가 없다. 사실 알 수 없어서 운다. 어떻게 단 하나의 이유로 달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런 사람일 수 있는지 매 순간 모르겠고 조금씩 질투하면서 운다. 모르는 것들에는 질투가 나고 울었다.

그래도 그때는 몰라야 했다. 무례한 확신으로 사람들을 나의 세계에 편입시키는 동안 보지 못한 게 많았다. 주변 사람들이 각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살고 있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인칭을 버리기로 한 결심은 그제야 주변의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이었다. 등장인물로 살기. 행인5든 동료2든 누군가의 이야기를 채워주는 세부의 하나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종종 아름다운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지 못해 영업에 실패하곤 한다. 내가 이야기 자체에서 쾌감을 느끼는 편이 아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때면 언제나 작은 조각들을 떠올렸다. 전체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은—어쩌면 무의식중에 나온—것이어서 없다 해도 이야기의 아름다움이 무너지지 않았을 그런 것. 따로 떼어놓아 읽으면 이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것.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 때 나는 그 작은 순간에야말로 가장 중요한 비밀이 숨어있다고 확신했다.

아주 작은 순간이 눈에 들어올 때,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건 곧 책장 밖의 세계에서도 아름다운 세부가, 이를테면 복선이 될 어떤 순간을 만나게 되리란 것이었다. 모르고 지나갈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 이들의 삶이 그러하듯 나의 삶도 그런 세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 그것은 세상을 긍정할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운명을 믿지 않는다. 우리를 운명적으로 만들어줄 순간을 지금도 지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더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햇살이 방을 비껴갔다. 작은 방의 벽 하나를 차지하는 블라인드를 올리고 이중창을 연다. 찬 공기를 들인다. 겨울이 낮고 무겁게 내린다. 연말이 다가온다.

이맘때면 모두가 그러하듯 지난 1월 1일 0시 0분을 울린 타종 소리의 잔향이 어떤 떨림으로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생각한다.

올해를 시작한 다짐은 ‘이름을 기억하자’였다. 내가 만나는 세계를 배경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곳에서

조만간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모든 건 이야기니까요.

황규성은 정유경강담비,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함께합니다.